‘소비’와 화해하고 나아가는 법
‘소비’와 ...

Interviewee|이현숙

  • 연령 28세

  • 근로형태 자영업

  • 연차 1~3년차

  • 보유한 금융 상품 신용카드,예적금

  • 한 달 생활비 200~250만 원

이현숙이 매달 일정 금액을 저축하는 것만큼 주기적으로 쓰는 돈은 녹색연대, 인권운동사랑방 등 4개의 단체를 위한 후원비다. 정기적인 수입이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은 그녀가 매달 한 번씩은 꼭 들르는 가게를 소개하자면, 그녀의 집 앞 골목에 있는 ‘정오의 빛’이다. 이름에서 비범함이 느껴지는 이곳은 이현숙의 표현에 따르면 “아주 굉장히 깔끔하게 정리해놓고, 릴케의 책을 꽂아둔 뒤 고요한 음악을 튼 뒤에야 비로소” 문을 연다는 작은 도자기 가게다. 한 달에 한 번씩 이곳에 들러 작은 컵을 사는 그녀만의 규칙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는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목에서 정오의 빛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위안을 받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자신의 소비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소비가 생겨야 정오의 빛이 오래 그곳에 있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 매달 정갈한 모양의 컵이나 그릇을 구매해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하는 모습에서 그녀의 소비 생활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현숙은 '인다'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시인 박노해의 ‘인다라의 구슬’에 감복 받아서 만든 별명이다. 박노해는 사람 사이에 인드라망이 존재하고, 이는 누군가를 꼭 설득하지 않아도 스스로 열심히 살면 자연스럽게 공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내가 먼저 인사하기 / 내가 먼저 달라지기 / 내가 먼저 정직하기 / 내가 먼저 실행하기” 이 시의 일부 구절처럼 이현숙은 가장 먼저 자신이 가치 있게 사는 게 중요함을 깨달았다고. 그녀는 이 별명을 실천이라도 하듯 ‘여기공’이라는 플랫폼을 정력적으로 이끄는 중이다.​

여기공 협동조합은 ‘여성과 기술’이라는 문제의식 아래, 공동의 교육과 네트워킹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사람들의 플랫폼이다. 여기공이라는 이름의 ‘여기’는 ‘여성 기술자’의 줄임말이고 ‘공’은 무언가를 같이 만드는 공작의 공, 함께를 뜻하는 공, 공공성의 공, 공간의 공을 뜻한다. 여기공은 이현숙을 포함한 5명의 이사와 2명의 실무자가 함께 운영하고 있다. 최근 SNS를 통해 여기공이 기획한 워크숍이 2030의 여성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면서 주목 받았다. 올 여름 동안 진행했던 수업 <집, 젠더 관점에서 해체하기>는 가사 노동, 주거 공간, 안전한 집 등의 키워드로 집을 새롭게 들여다본 강의 였으며, 신청 페이지가 오픈하자마자 빠르게 매진 되었다. 공구 다루는 법, 수리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집 고치는 여성들: 여기공 주택수리과정 입문반>역시 꾸준히 사랑 받는 워크숍이다.

“동네 비건 빵집에서 빵을, 근처 철물점에서 못이나 망치 같은 재료를 사요.”

이현숙은 여기공의 멤버들과 함께 워크숍 기획부터 강의 등을 직접 도맡고 있다. 하나의 워크숍을 진행하기 직전 꽤나 긴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 수강생들을 위해 준비하는 빵부터 공구 수업을 위한 재료를 사는 데 공을 들이기 때문이다. 이현숙은 워크숍을 위한 자재를 손쉬운 인터넷 쇼핑도, 대형 마트도 아닌 동네 가게에서 산다. “제가 급할 때 도움받는 곳은 이웃 가게 사장님들인데 그들의 물건을 사는 게 여러모로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어요. 저희는 동네 비건 빵집에서 수강생들을 위한 빵을 사고 근처 철물점에서 못이나 망치 같은 재료를 사요. 직접 가서 사고 안부를 묻기도 하고 멤버들과 같이 여기공으로 들고 오죠. 시간은 더 걸리지만 저는 ‘얼굴 있는 소비’가 더 좋아요.” 이현숙이 말한 얼굴 있는 소비, 그 현장을 함께 따라가보니 ‘창전사 공구’라는 간판이 달린 점포가 나왔다. 그녀가 이것저것 필요한 걸 말했고 나이가 지긋하신 두 내외 중 한 분이 분주하게 재료를 골라준다. 다른 한 분은 그녀와 이 지역 일대 철물점 주인들의 안부를 주고 받으며 한참을 이야기했다. “공수가 들어가는 소비를 하려고 해요. 이렇게 동네에서 물건을 사면서 관계를 맺다 보면 서울도 충분히 살고 싶은 곳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포구 신수동의 주택을 개조해 만든 멋진 외형의 건물에 여기공의 사무실이 입주해 있었다. 이곳은 업무, 주거, 창업 공간이 복합된 코리빙 스페이스 로컬 스티치local stitch의 건물이다. 나뭇결을 그대로 살린 로비 겸 거실엔 이현숙을 만나러 온 이가 있었으니 이현숙이 요즘 가장 즐겨 입는다는 의류 브랜드 바고클로딩Bagotclothing의 대표 성아리다. 지금 이현숙이 입고 있는 검정색의 린넨 소재의 원피스 역시 바고클로딩의 옷. 여기공 멤버를 포함하여 수강생들이 입는 워크 웨어는 전부 성아리가 디자인하고 제작한 옷이다. “SPA 브랜드에서 2만 원이면 살 수 있는 옷을 여러 번 참아서 바고클로딩의 옷을 사요. 주로 워크웨어를 사는데, 원단 고르는 것부터 디자인, 마감, 수선 등 전 과정을 알 수 있고, 작업자의 선택을 신뢰할 수 있어요. 한 번 입어보면 계속 입게 되는 옷이에요.” 그 후로 한참 동안 둘은 이현숙의 옷에 대해 얘기했다. 수선이 필요한 부분과 새로 디자인하는 옷에 쓰일 원단 등 만약 워크웨어의 오트쿠튀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세심한 부분까지 상의 했다.

관심 있던 분야의 신간이 나오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사곤 한다.

돈을 쓰는 곳의 의미를 누구보다 많이 생각할 것 같은 이현숙도 소비에 대한 후회를 하기도 할까? 의외로 그녀는 기본적으로 “나는 충동적인 소비를 했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충동적 소비 품목 중 하나는 책이다. 평소에 좋아했던 철학가의 자서전이 발간되거나 관심 있던 분야의 신간이 나오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사곤 한다. “요즘 바쁜 일상을 보내기 때문에 머리로는 ‘이 책을 사면 절대 못 읽을 거다’라 알고 있죠. 하지만 책의 목차만 펼치는 순간 이미 저는 신나서 사고 있더라고요. (웃음) ”가장 최근에 이렇게 구매한 스테이시 앨러이모의 책 <말, 살, 흙>은 다행히 아직까지 꾸준히 재밌게 읽고 있기에 후회스럽지는 않다고 전했다.

그녀가 돈을 쓰는 곳 이면에는 친환경, 여성과 젠더, 지역 상권 등 자신만의 가치가 골고루 녹아 있다. 이런 적재적소에 그녀의 가치가 깃든 소비를 하는 일은 언제나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런 소비를 실천하기 위해 나 자신과 마치 싸우듯이 소비한 적도 있어요. 하지만 누구나 완벽할 순 없고 어떤 소비도 완벽할 순 없더라고요. 지금은 내가 모자란 점을 인정하고 포기하지 않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원하는 소비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나’ 자신과 화해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이현숙은 여기공 업무로 바쁜 와중에도 ‘나만의 행복 장치’를 여러 곳에 두고 있다. “같이 사는 코파운더 친구와 두레생협에서 산 신선한 재료로 같이 밥을 해먹고 수다 떠는 게 요즘 저의 일상의 최고의 ‘소확행’이에요.”

여기공의 리더로서 이현숙에게 은퇴란 어떤 의미인가요?
이현숙 구체적으로 은퇴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10~20년 후를 상상해본 적 있어요. 오랫동안 누군가 한자리를 맡고 있으면 아무래도 안 좋게 흘러가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 자리(여기공 협동조합의 대표)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을 10년 안에 찾고, 여기공과 함께 활동할 수 있다면 20년 후쯤 다른 NGO를 만들어도 좋지 않을까 상상해봤어요. '오지랖'이라는 이름으로 여기저기 다 간섭하는 일. 인권이나 환경 등 기준을 정하지 않고 모여 있는 사람들의 서사에 따라서 조직을 지역(의성)에서 만들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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