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꽃집을 짓다
시인, 꽃집을 짓다

Interviewee|이병률

  • 연령 55세

  • 근로형태 프리랜서

  • 연차 13년차 이상

  • 보유한 금융 상품 신용카드,예적금,보험

  • 한 달 생활비 250~300만 원

“욕심이 많은 사람인 건 정말 맞지만, 그 욕심이란 것이 물질을 많이 소유하고 싶은 것이라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 마음에 있는 것 같아요.” 어릴 적부터 하고 싶은 일이 워낙 많았다는 그의 말처럼 이병률을 수식하는 단어는 다양하다. 시인이자 여행 작가이고 달 출판사 대표, 그리고 2021년 꽃집 주인이란 업도 슬며시 더했다. 서울시 종로구 삼일빌딩 지하 1층 카페꼼마 옆, '그대가 준 꽃'이란 꽃집이 그가 올해 초부터 식물을 돌보고 꽃다발을 만드는 곳이다. 이병률은 어떤 연유로, 무엇을 쓰다가 꽃집을 짓게 되었을까.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2020),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2012), <끌림>(2005) 등의 책을 통해 시와 산문으로 세상과 안부를 주고받던 이병률이 꽃집 그대가 준 꽃(@flowers_fromyou)을 열었다. 벽마다 서가가 빼곡하고 이따금씩 원두 가는 소리와 고소한 커피 향이 틈새를 메우는 카페꼼마 삼일빌딩점 한편에 말이다. 카페꼼마는 문학동네 출판그룹에서 만든 북 카페다. 이곳에서 그는 시를 쓰던 손으로 꽃줄기를 매만지고 식물의 건강을 보살피고 있다.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책과 꽃이 잘 어울리는 건 맞지만 사업 아이템으로 둘을 붙이기에는 기대 수익을 선명하게 그리기 어렵지 않나. 그는 어떤 마음으로 꽃집 사업을 시작했을까.

욕심이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 마음에 있는 것 같아요.

왜 꽃집이었나요?
인터뷰하는 이 공간은 문학동네 출판그룹에서 운영하는 카페꼼마 삼일빌딩점이고, 그대가 준 꽃은 그 안에 입점해 있는 형식입니다. 저는 문학동네 출판그룹 계열사인 달 출판사 대표로 있는데 카페꼼마가 지점을 여러 개 늘릴 계획을 하던 당시 이곳에 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식물 가게를 열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다만 한국 건축사에서 삼일빌딩이란 건물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 최근 리모델링을 마친 터라 공간이 무척 아름다워 자주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후 카페꼼마 삼일빌딩점 계획을 구체화하는 단계에서 이곳에 마켓 분위기가 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는데, 마침 제가 오래전부터 식물 가게를 열고 싶어 했고 저의 파주 작업실에서 식물을 많이 키우고 있던 터라 자연스레 맡게 되었어요. 제가 돌보던 식물을 하나둘 이곳으로 가져와 식물 가게 겸 꽃집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자연스럽게’ 사업을 시작하기에는 리스크가 적지 않았을 텐데요. 셈이 빠른 편인가요?
그렇지 않아요. 그리고 제가 운영하는 사업체가 뛰어나게 수익을 많이 내지도 못합니다. (웃음)밖에서 보았을 때 그렇게 보일 뿐이죠. 물론 큰 수익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저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 자체가 보이지 않는 감옥이 되기 쉽고 그 안에서 무기수로 살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식물 가게만 생각했는데 식물 사러 온 분들이 꽃도 찾지 않을까 싶어서 함께 뒀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꽃 소비에 인색하다는 건 잘 알아요. 하지만 세상에 꽃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도 잘 알죠.

어느 때 식물과 꽃을 사나요?
여행길에서 만난 유럽 사람들에게 배운 게 있어요. ‘나이 많은 여성을 만날 때는 무조건 꽃다발을 선물해라.’ 그 이야기를 듣고선 이유를 물을 필요가 없는 게, 너무나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선생님들, 선배님들 뵈러 가는 길에 저는 늘 꽃다발을 샀어요. 그렇게 꽃을 선물할 특별한 일이 있지 않아도 꽃을 사는 습관이 들었죠. 유럽에서는 카페에서 커피 한잔 마시듯이 꽃 한 송이를 사요. 꽃이 대단한 무엇이 아니라 간단한 무엇이죠. 그런 의미에서 케이크도 자주 사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떡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차 타고 길을 가다가도 떡집에서 하얀 김이 새어 나오면 잠시 정차하고 떡을 삽니다. 특별한 날이 아닐지라도 누구에게 주고 싶은 마음에요. 누군가는 묻죠. “무슨 날이야?” 그럼 저는 대답합니다. “아무 날도 아닌 날이야.” 이런 일상의 잔잔함을 그때그때 자주 갖는 걸 좋아해요.

이병률은 20대 때부터 통장 잔고의 숫자를 키우는 일보다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을 수익의 원천으로 삼았다. 매번 여행자 신분으로 길을 나섰고 그 길에서 적금하듯 문장을 쌓았다. “26살부터 지금까지 여행자로 살고 있죠. 훌쩍 집을 떠나서 파리에서 2년을 살 때도 부모님은 모르셨어요. 제가 잠시 여행 간 거라고 생각하셨지 그렇게 오래 집에 안 들어오리라는 건 모르셨죠. 한자리에 오래 머물다 보면 뜨내기 관광객 신분으로는 들을 수 없는 일상의 숨소리가 들려요. 제게는 그것이 색다른 자극이에요.” 길에서 쓴 문장이 쌓여 글이 됐고 책이 됐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이병률은 ‘여행 에세이’라는 장르의 지평을 연 작가로 불린다. 여행 에세이 분야로 낸 첫 책 <끌림>은 ‘10년간 가장 많이 팔린 여행 에세이’, ‘100만 부 넘는 판매고 기록’ 등의 수식어가 붙었다.

작가에게 재테크란?
작가에게 재테크란 어떤 책이 계속 나올 수 있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다음 책에 내가 무엇을 쓸 수 있을까, 어떤 새로운 독자를 만날 수 있을까. 중요한 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목표로 두기보다는 그 원고가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그러니까 절반은 실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담담하게 인정하고 시간을 묵묵히 쌓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 재테크에서 성공 지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얼마나 풍성한가. 인생에서 놓치고 싶지 않은 리스트를 무엇으로 채우고 있는가. 내 인생의 명장면이라 손꼽을 순간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 이 질문에 난 과연 어떻게 대답할 수 있느냐가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숫자의 개념입니다.

이병률은 개인 사업자로서, 프리랜서로서의 불안을 긍정한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자신만의 세계를 지어 올리는 일의 첫 번째다. “잠시 직장인으로 일한 적도 있지만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하는 일상은 제게는 맞지 않는 옷 같았어요. 새벽 2~3시까지 활자와 치열하게 싸우다가 잠드니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하는 건 제 리듬과는 너무도 맞지 않았죠. 그래서 저를 위해서만 벌고 그걸 다 쓸 수밖에 없는 삶을 선택했어요. 그러니 자연스럽게 제 삶을 받치고 있는 것은 불안이었어요. 그래도 스스로 잘 살고 있다고 최면을 걸었어요. 허투루 사는 것이 아니라 시를 쓰고 글을 쓰고 차곡차곡 모으는 무엇이 있으니까, 이 최소한의 것만으로도 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꽃집에서의 하루는 어떤가요?
그대가 준 꽃 매장에는 일주일에 2~3일 출근해 일을 봅니다. 예약 주문이 들어온 꽃다발이나 꽃바구니를 만들거나 원데이 클래스를 진행해요. 화분에 식재하고 스타일링하고 꽃다발 만드는 수업을 통해 여러 분과 만나 사는 이야기도 나눕니다.

이병률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끝나면 이탈리아 남부의 한적한 시골 마을로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시작되기 전부터 계속 생각해오던 것이에요. 관광객의 자취를 보기 어려울 만큼 아주 작은 시골에 집 한 채 빌려 한동안 머무르고 싶어요. 너른 책상 하나를 두고 내키면 글을 쓰고. 물론 많이 못 쓸 거예요.(웃음) 장이 서면 그 앞에 하루 종일 가 앉아 있겠죠.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흘낏흘낏 관찰해가면서. 모두가 여행을 못 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여행의 허기는 저만의 허기가 아닐 거예요. 그런 시기를 거치고 나서 모두 떠날 수 있는 날에는 우리가 조금 성장해 있을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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