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가 인정한 남다른 필동 사랑법
유네스코가 인정한 남다...

Interviewee|박동훈

  • 연령 58

  • 근로형태 자영업

  • 연차 13년차 이상

  • 보유한 금융 상품 신용카드,부동산

  • 한 달 생활비 300만 원 이상

‘나는 필동에 빚졌다.’ 박동훈 핸즈BTL 대표는 사옥을 올리던 2012년에 문득 자신이 필동에서 얻은 게 많은 데 비해 동네에 기여한 것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 길로 빚을 갚겠다는 다짐에 매일 닦고 윤을 낼 정도로 아끼던 라이카 카메라 일체를 몽땅 팔아 필동 골목에 누구나 볼 수 있는 미술관을 지었다. 이토록 화끈한 셈법을 당신은 들어본 적이 있는가.

지리산 산골짜기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상경했다. 청계천에서 넝마주이부터 시작해 철가방 배달, 전파상, 인쇄소 잡부 등 열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지난날을 밑천 삼아 이제는 필동에 어엿한 사옥을 갖추고 직원 50여 명을 둔 광고 회사 대표가 됐다. 디자인 어워드의 인정을 받은 스트리트 뮤지엄(거리 미술관) 프로젝트부터 극적인 인생사, 바로 박동훈의 이야기다. 그는 동네에서 사람을 얻고 지혜를 얻은 덕분에 자신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필동에 진 빚을 갚아야겠다고 소매를 걷어붙였다.

도대체 필동에 무슨 빚을 어떻게 졌다는 말입니까?
저는 사람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빚을 진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빚은 스스로 결정한다고 봅니다. 빚이 없다고 생각하면 그리 또 살아갈 일이겠지만 저는 빚이 있었습니다. 바로 배움에 대한 빚이죠. 남들 다 있는 대학교 졸업장도 없이 밥벌이를 하고 먹고살 수 있었던 건 필동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는 그들에게 학비를 냈나? 나 혼자 이리 잘 먹고 살아도 되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새 같이 길 위에서 부대끼며 살았던 사람들이 다들 떠나고, 떠나지 못한 이들만 남았단 말입니다. 그래서 셈을 했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유학 한 번 다녀온다고 치면 한 5억에서 7억 원 정도가 들겠더라고요. 그 비용만큼이 제 빚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셈하는 것도 대단한 용기인데, 그 비용을 진짜로 지불한 격이 됐습니다.
그래서 회삿돈으로 동네에 기여를 좀 할랬더니 우리 회계 팀 직원이 완전 각 잡힌 정석 교과서예요. '대표님 빚은 대표님이 알아서 하시라'고 하는 통에 돈을 마련할 방도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때 예전에 본 미국 영화 한 편이 생각났어요. 두 꼬마의 우정을 그린 이야기인데, 병을 앓던 한 아이가 먼저 세상을 떠나요. 장례식장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남은 아이가 자신의 신발을 벗어서 친구 곁에 두고 돌아옵니다. 그 모습을 본 어머니가 이유를 물으니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줄 때는 돌려받고 싶은 선물을 주는 거예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아끼는 게 뭐지?’ 하고 생각해보니 라이카 카메라가 떠올랐습니다. 그것만큼은 제가 맨날 꺼내서 닦고 돌봤거든요. 그래서 라이카를 팔아 필동 골목에 미술관을 만들었습니다. 훗날 미술관을 오가는 사람들을 보는데, 장식장에 둔 라이카를 보는 것만큼이나 행복하더라고요. ‘아직 라이카가 내 것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감동이 계속 이 일을 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줄 때는 돌려받고 싶은 선물을 주는 거예요”

미술관 하나 만들어 기부하고 끝내려 했더니 거기에서 또 사람을 만났다. 화가, 설치 예술가, 음악가들을 만나고 그들이 나설 무대를 하나씩 만들다 보니 예술통 거리가 되었다. 남산골 한옥마을 일대 골목에 8곳의 스트리트 뮤지엄을 비롯해 공연장, 카페, 미술관이 순차적으로 생겼다. “예술통 거리는 기획한 게 아니에요. 그냥 혼자서 마음의 빚을 갚자고 시작했던 것을 좇아가다 보니 혼자서는 못 했을 골목 조성까지 이어진 거죠. 제가 27살에 회사를 만들었고 47살에 사옥을 지으면서 1호 미술관을 지었어요. 올해 57살이 되어 뒤를 돌아보니 참 뜻깊은 투자이자 수익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필동 예술통 거리는 필동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공간이 되었고, 2019년 유네스코시티 네트워크가 후원하는 휴먼시티 디자인 어워드에서 전 세계 25개국 75개 프로젝트 중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대상 후보로 선정됐다. 지난 7월에 서울시가 발표한 필동 문화예술타운 개발 계획의 핵심 자리로 선정되기도 했다.

박동훈은 컬렉터의 면모가 다분하다. 바우하우스 시대에 생산된 조명부터 예술 서적, 초기 애플 컴퓨터, 프라모형, 캠핑 장비, 심지어 식물까지 그의 창고에는 시대를 가로지르는 물건과 이야기가 가득하다. 세상에 열려 있는 태도여야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낯선 주제도 껴안을 수 있다는 광고쟁이의 진심이다.

공연장 코쿤홀의 나무 의자가 굉장히 독특합니다. 어떤 이야기가 담긴 물건인가요?
영국 런던의 오래된 오페라하우스가 폐관하면서 경매로 내놓은 의자들을 사 왔습니다. 에이징이라고 하죠. 그 오페라하우스에서 좋은 음악들로 에이징된 의자라면 코쿤홀에 와서도 멋진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울림통이 좋다’는 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제가 원체 스토리가 있는 물건을 좋아합니다. 어릴 때 경남 산청에서 살았는데 못 하나 보기 어려울 정도로 깊은 지리산 산골짜기였어요. 상경하고 나서야 전깃불을 처음 봤을 정도죠. 그래서 물건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버리지도 못해요. 혹자는 이 많은 것을 어떻게 다 수집했느냐고 묻는데, 그저 안 버리고 가지고 있어서 이렇게 역사가 된 겁니다.

요즘 즐겁게 시간을 투자하는 데가 있다면요?
음악 듣는 것도 소문난 취미이긴 한데, 요즘에는 특히 모토캠핑을 즐깁니다. 바이크 타는 걸 워낙 좋아해요. 그래서 종종 혼자서 훌렁 짐 싸서 이름도 모르는 숲에 가서 쉬다 옵니다.

'은퇴'라는 단어는 어떤 질문을 남깁니까?
사실 은퇴를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중요한 건 자신을 제대로 아는 것 같습니다. 30~40대에 하던 것처럼 스피드 레이싱을 하고 매일 웨이트트레이닝을 할 수는 없겠지만 60대, 70대에는 다른 방식으로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레이싱 팀을 직접 운영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웃음) 그러니 결국 지금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 전의 나와 비교하거나 누구의 시선을 의식하는 건 무용한 일 같습니다. 저는 은퇴가 아니라 이직이나 창업을 할 것 같아요. 또는 다른 무엇을 찾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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