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업일치를 이룬 분재 전문가
덕업일치를 이룬 분재 ...

Interviewee|문창범

  • 연령 48

  • 근로형태 자영업

  • 연차 13년차 이상

  • 보유한 금융 상품 보험,부동산

  • 한 달 생활비 300만 원 이상

20살 때는 '분재'라는 말도 몰랐다. 그러다 35살 무렵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을 하며 분재의 매력에 깊이 빠져들었고 결국 만 45살 되던 해에 분재원을 열었다. 장사라는 새로운 미션 앞에서도 기죽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무려 25년간 공들여 가꾸고 지금도 사랑하는 취미가 분재이기 때문이었다.

문창범은 20살 때 용달차에서 파는 5000원짜리 해송으로 분재 세계에 입문한 자신처럼 더 많은 사람들이 소소하고 사소하게 분재와 만나기를 바란다. 이에 2020년 2월 경기도 양주에 두 동짜리 분재원을 열고 본격적으로 분재업에 뛰어들었다. 그의 분재원에는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5000원짜리 미니 분재부터 전국에 세 그루밖에 없다는 황피소사 정원수까지 다양한 나무가 자란다.

사실 분재를 향한 사랑은 그보다 훨씬 일찍 꽃피었다. 3년간 인터넷 카페의 분재 커뮤니티에 올린 글만 해도 700건이고 소사나무 한 그루를 7년간 매일 관찰하며 쓴 일기로 책도 냈으니 말이다. 만무득이라는 닉네임 또한 분재를 처음 알게 된 그 시절 만든 것이다. “2007년 본격적으로 분재 공부를 시작하면서 인터넷 카페에 가입하려고 하니 닉네임을 적는 칸이 있는 거예요. 번뜩 ‘만무득’이란 말이 떠올랐어요. 그때는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았어요. 그리고 카페 활동을 했는데 어느 순간 보니까 제가 참 열정적으로 하고 있더라고요. 외국 분재 기술을 남보다 먼저 습득해 이리저리 시도해보고 장단점을 분석해 글을 올리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까 많은 분들이 ‘만무득’을 알아주신 것 같아요.”

만무득이란 이름에 지금은 뜻이 있나요?
뜻이 생긴 계기는 따로 있는데, 2009년에 제가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어요. 운전 중이었는데 반대편 차선에서 큰 쇳덩이가 날아와 얼굴을 강타했죠. 다행히 이렇게 회복은 했지만 그때 사고로 왼쪽 눈을 실명했어요. 퇴원하고 나서 다시 분재를 하려고 보니 눈의 초점을 맞출 수가 없더군요. 가위를 들고 잎을 치는데 제 손가락을 찌르고 있고. 그런데 저는 거기서 멈추기보다 더 치열하게 연습했어요. 하고 싶었으니까요. 그렇게 2년 정도 노력하니까 두 눈으로도 안 보였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죠. ‘만 가지를 버려도 한 가지를 얻을 수 있는 이름이구나’, ‘더 겸손하게 살아야겠다’ 하고요.

“만 가지를 버려도 한 가지를 얻을 수 있는 이름이구나”

정말 분재를 사랑했군요?
2020년 분재원을 오픈하기 전까지는 원래 계절 장사를 했어요. 겨울만 바쁘고 봄부터 가을까지는 널널한 일이었죠. 그래서 여유가 있을 때는 지방 곳곳의 분재원을 찾아다니며 분재를 배웠어요. 충북 옥천에 송설산방이라는 굉장히 유명한 분재원이 있는데, 그곳 원장님이 무료로 강의해주셔서 새벽 4시에 서울을 출발해 밤 11시에 돌아오는 일정으로 수강하기도 했어요. 그것도 모자라 최소한 일주일에 3일은 그곳에서 살자는 마음으로 원장님께 붙어 있기도 했죠. 그렇게 푹 빠져 있을 때는 배우고 있는지도 몰랐어요.

그렇게 열정을 쏟았으면 더 빨리 분재원을 내고 싶었을 텐데요.
열심히 했으니 실력이 굉장히 늘었겠지 생각했지만 아니었어요. 3년 교육과정이 끝난 뒤 종로의 한 옥상에서 홀로 분재를 해보려는데, 막상 하려니까 손이 안 움직였어요. 그러면서 깨달은 것이 저는 그동안 원장님이 알려주신 대로만 움직였더라고요. 스스로 개척했다, 노력했다고 여겼지만 실제로는 도움을 받았던 거죠. 원장님과 했으면 5분 만에 끝날 일을 혼자 2시간 동안 하고 난 뒤 더 배워야겠다고 깨달았어요. 원장님께 배운 걸 활용할 수 있게 된 건 그로부터 3~4년 뒤였어요. 그래서 저는 지금 수강생분들 것을 해주지 않아요. 직접 산에 올라봐야 그 감동과 멋을 아는 것처럼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직접 해보시라고 해요.

가장 애틋한 나무는 어떤 건가요?
누구나 로망이란 게 있잖아요. 정말 갖고 싶은 딱 한 점, 저는 그게 서어나무였어요. 자작나무과인데 분재수로는 드물어요. 유명하신 분재인께서 서어나무를 소장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한 날 그분께서 나무를 정리한다는 소문을 저의 선생님을 통해서 듣게 된 겁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모시고 무작정 익산까지 찾아갔습니다. 저는 명함도 못 내밀 자리였기에 두 분의 대화가 끝난 다음에야 “만무득이라고 합니다”하고 인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벌떡 일어나서 제 손을 잡아 주시더라고요. “아이고 선생님이 오셨네!” 하시면서요. (웃음) 그간 제가 카페에 올린 글을 보고 계셨던 겁니다.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조심스레 “다른 이들과 함께 공부할 요량으로 좋은 나무를 찾고 있습니다. 혹시 제가 살 수 있겠습니까?” 물었더니 “못할 것도 없지요! 젊은 사람이 한번 잘 키워보세요”라고 본인이 10년 전에 산 금액으로 그 서어나무를 선뜻 양도해 주셨습니다. 그때의 감동은 잊지 못해요. 제가 아는 한 가장 멋지게 돈을 쓰신 분입니다. 훗날 저도 그렇게 멋지게 후배 분재인에게 양도하고 싶어요.

유튜브는 2020년 4월에 시작했다. 카페 활동, 블로그 기록에 진심이었던 만큼 유튜브도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기 좋은 도구였다. 볼 줄만 알았지 영상을 어떻게 업로드하는지도 몰랐지만, 그는 카메라부터 샀다. 그리고 “유튜브 하려는데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카페에 게시 글을 올려 도움을 청했다. “제 글을 본 어떤 회원분이 선뜻 ‘10회차까지 편집을 도와줄 테니 촬영 먼저 해보세요’라고 말씀해주셨어요. 한 편 찍는 데 40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편집본은 6분 컷으로 끝났습니다.(웃음) 어쨌든 그것이 ‘분재아저씨 만무득’ 채널의 시작이었고 지금은 아내가 편집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저는 주로 기법, 경매 소식, 분재의 매력 등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비싼 분재가 좋은 분재’, ‘분재는 고급 취미’ 이런 고정관념을 깨고 싶어요. 유튜브는 제 진심을 전달하는 창구이자 고객과 소통하는 자리라고 생각해요.”

취미를 업으로 삼지 말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잖아요. 취미가 곧 업인 당신은 언제 즐거움을 느끼나요?
분재를 살 때죠. 취미로 즐길 때처럼 주머니에 한 50만 원 챙겨서 다른 분재원에 분재 사러 다니고 그래요. (웃음) 키우고 싶은 나무를 고를 때의 그 설렘, 그리고 값을 지불하고 내 손안에 들어왔을 때의 기쁨, 저는 그것이 분재를 하는 즐거움의 80%를 차지한다고 생각해요. 새 옷을 샀을 때의 기쁨처럼 분재도 마찬가지예요. 내 맘처럼 안 자라거나 나무가 아프거나, 곧 마주할 현실이 있겠지만 구매하는 그 순간만큼은 행복을 만끽합니다.

이토록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요?
저는 이 일을 굉장히 사랑합니다. 90살까지 이 일을 하겠다고 이야기해요. 그런데 한편으론 육체적으로 고된 일이기도 해요. 개업하고 제대로 쉰 날이 딱 하루이고, 보통 아침 8시에 출근해서 밤 10시에 퇴근해요. 막내딸이 5살인데 놀아줄 시간이 없어서 미안할 따름이죠. 그래서 목표를 세웠어요. 3년 안에 자리 잡아서 4년 차부터는 조금 편하게 일해야겠다, 그리고 지금까지 주변 지인들에게 받은 지원과 도움에 보답해야겠다. 사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때 저를 이끌어준 분재인 동료들이 있어요. 그들에게 저도 도움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 더 열심히 하는 거예요. 보통 분재업은 개업 3년 차까지는 적자라고 하는데 저는 6개월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겼어요. 저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만무득의 분재이야기는 사고 싶다고 살 수 있는 분재원이 아니다. 구매를 위한 일종의 통과 의례가 있다. 만약 당신이 나무에 대한 기초 상식 없이 그저 예뻐서 사겠다고 하면 문창범은 팔지 않을 것이다. “아무래도 그렇게 분재를 사서 키우면 곧 죽게 됩니다. 그러면 손님은 ‘나는 분재랑 맞지 않네’ 생각하고 두 번 다시 분재를 시도하지 않겠지요. 상위 10%를 위한 작품 대신 90% 대중을 위한 분재를 하고 싶은 저로서는 그런 관계가 생기길 원치 않습니다.” 이것이 그가 자신의 시장을 만드는 비결이고 업을 대하는 신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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