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는 동네를 만드는 비결
뜨는 동네를 만드는 비결

Interviewee|김종석

  • 연령 54

  • 근로형태 자영업

  • 연차 13년차 이상

  • 보유한 금융 상품 신용카드,예적금,보험,부동산

  • 한 달 생활비 300만 원 이상

“이곳이 제가 리모델링 설계를 한 건물이에요. 그리고 저기, 그 건너편, 그 다다음에 있는 건물도 쿠움파트너스가 했고요.”(웃음) 이 한 문장으로 김종석 쿠움파트너스 대표의 활약이 설명될 수 있을까.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골목길 어느 어귀에서 보더라도 한 집 건너 한 집에 그의 지문이 찍혀 있는 셈이다. 연희동, 연남동 일대에 그가 설계한 건물만 셈해도 100채가 넘는다. 근린 상가, 상가 주택, 문화 시설 등 공간 유형이 다양하고 그중 80%는 리모델링 프로젝트였다.

이처럼 포트폴리오가 두둑해진 것은 김종석 스스로 돈의 행방을 돌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건축이란 개인의 일생에서 가장 큰돈을 쓰는 일이기 때문에 건축주에게 부끄럽지 않고 또 만족감을 주기 위해서는 돈을 허투루 보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남의 집도 내 집처럼, 남의 돈도 내 돈처럼’이 그의 지론이다. 이러한 마음은 구체적인 규칙으로 상세화되곤 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상가 건물을 설계할 때는 먼저 기획을 해요. 공간 크기나 창과 문 위치를 기획하는 일 말고도 인근 상권의 업종과 임대료 수준을 파악하고 예상 임대 수익을 예측하거나 공실률에 대한 리스크 관리, 나아가 순수익으로 건축・시공비를 5년 내에 환수할 수 있는지를 예측해봅니다. 건축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인 만큼 투자하는 돈에 꼬리표를 붙여 다시 돌아오는 노선까지 설계하는 것이지요.”

“돈에 꼬리표를 붙여 다시 돌아오는 노선까지 설계하는 것이지요.”

일할 때 재무 상태나 미래 목표를 꼼꼼하게 따지고 계획하는 편이에요.
저는 건축을 학교가 아니라 현장에서 배웠어요. 이전에는 전기공사를 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시장 감각을 먼저 익혔고 건축 시공 방식을 먼저 배웠죠. 쉽게 말해 돈이 어떻게 굴러가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건축주가 만족하는 건물을 지을 수 있는지를 더 일찍 배운 셈이에요. 제게는 시장조사가, 준공 이후 쓰임새가 너무나 중요해요. 최소한 은행 대출이자는 해결할 수 있어야 집 짓는 사람도 마음이 편할 것 아닙니까.(웃음)

가장 처음 맡은 일은 무엇이었나요?
제 집이었어요. 이웃 주민이 ‘이런 땅이 경매에 나왔다’고 소개해줘서 나대지를 매입했어요. 무엇을 해볼까 고민하다가 환급성을 가지려면 건물이 있어야 되겠더라고요. 오랜 고민 끝에 저희 가족이 살 공간과 원룸으로 이루어진 다세대주택을 기획했어요. 연세대학교와 가까운 위치라 원룸 수요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요. 준공하고 15일 만에 모든 룸이 임대될 만큼 성공적이었고, 이 과정을 지켜본 이웃들이 하나씩 일을 맡겨주셔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지요.

상담 문의가 많다고 들었는데 주로 어떤 문의인가요?
개업 초기에는 퇴직을 앞둔, 또는 퇴직한 분들이 노후 대비 명목으로 부동산에 관심을 갖고 많이들 찾아오셨는데, 요즘엔 30~40대도 많아요. 사업을 위해, 또는 안정된 보금자리를 위해 부동산을 사고 싶어 하는데 예전과 달리 다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오세요. 자본금 말고도 금융권의 대출 상품, 대출 폭, 금리 등등을 알뜰히 챙기는데, 굉장히 좋은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부동산 취득이 처음이라면 금융 부담을 덜고 최대한 안전한 활로를 찾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김종석이 지난 11월 매입한 연희동 건물

김종석은 지난 11월 연희동의 한 근린생활시설을 매입했다. 8년 전에 자신이 설계한 건물로 건축주가 먼저 연락을 해줬다. 건물의 목적과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현명하게 쓸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임대 계획은 꽤나 독특했다. “1층은 상업 공간, 2층은 공유 공간, 3층은 업무 공간으로 정했어요. 시세 대비 저렴한 임대료를 제안해 전도유망한 디자이너들에게 입주를 의뢰했고, 또 도시계획에 관심이 많은 청년 아티스트, 기획가에게는 무료로 제공하고 있어요. ‘저렴한 임대료’는 그들을 이곳에 유치하려는 전략이었죠.”

“제가 배려할 수 있는 부분은 배려하고 그것을 통해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저의 투자 방식입니다. 당장 임대료 50만 원, 100만 원 더 받는다고 해서 가치가 뛰어오르는 게 아니거든요. 좋은 사람을 동네에, 건물에 들어오게 하려면 그만큼 좋은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렇게 운영하면 은행 이자를 내고 200만 원 정도 남는데, 그건 모아뒀다가 건물 하자 보수, 관리비에 쓰려고 합니다.(웃음) 이것이 제가 꿈꾸고, 또 하고 싶었던 일입니다.”

김종석에게 건강한 재무란 어떤 의미인가요?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성공하느냐, 저는 그 기준으로 봐요. 단순히 돈의 크기, 생활의 편리함이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제가 기획하고 설계한 건물을 사람들이 좋아해주고, 그곳에 자리 잡고 일하는 사람이 성공하고, 나아가 동네가 활성화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행복해요.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성공하느냐, 저는 그 기준으로 봐요.”

그는 건물 설계를 넘어 도시계획 차원의 골목 만들기, 마을 만들기에 관심이 많다. 전략은 단순하다. 좋은 공간의 힘을 경험한 사람은 다음에도 좋은 공간을 찾는다는 것. “다섯 차례 의뢰한 건축주도 있어요. 그런 분들이 있었기에 연희동 카페 거리가 탄생할 수 있었고, 연남동의 세모길, 합정동의 토정로가 생겨났습니다. 일반 개인이 골목을 만든다? ‘만든다’기보다는 ‘선도한다’고 봐야죠. 멋진 건물에 좋은 임차인이 들어오고, 그 덕분에 건물 가치가 오르고 마을이 활성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도시를 함께 만들어가는 겁니다.”

그의 사무실은 동네 사랑방 같았다. 골목길을 향해 활짝 열린 1층 현관문이 오가는 주민들을 반겼다. “이웃들이 지나가다가 빼꼼 들여다보고 제가 있으면 들어옵니다. 그만큼 편한 사이예요. 제가 이 동네에 스무 살 때 들어왔어요. 그때는 전파사를 했는데 다들 '김 군아~' 하고 불렀죠. 지나고 보니까 저는 개선장군이었어요. 어려운 상황에, 난처할 때 제가 찾아가 문제를 해결하는 거잖아요. 전기가 나갔다든지, 냉장고가 고장 났다든지, 세탁기에 양말이 끼였다든지. 그러니까 저는 그들에게 돈을 받는 입장인데도 늘 예쁜 사람이었던 겁니다.(웃음) 그렇게 20년 이상 소통한 결과가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건축을 한다고 했을 때 밀어주고 끌어주고 기다려주는 신뢰로 나타났다고 봅니다. 저는 연희동 자체가 제 집이라고 말해요. 앞으로도 이곳에서 계속 저만의 투자를 이어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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