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사이클링 공예, 쓰임의 가치를 부여하다
업사이클링 공예, 쓰임...

Interviewee|박선민

  • 연령 38

  • 근로형태 프리랜서

  • 연차 13년차 이상

  • 보유한 금융 상품 신용카드,예적금,보험

  • 한 달 생활비 250~300만 원

“기능을 다했다고 해서 물체가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다른 역할로 새로운 존재감을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버려진 빈병이 우리 곁에 좀 더 있을 만한 가치를 만들어주는 작업을 하는 것 같아요.” 박선민(@re_bottle_maker)은 유리공예가다. 특이하게도 그의 작품 재료는 소주병, 와인병처럼 다 쓰고 버린 유리병이나 유리 용기다.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빈용기보증금제도에서도 제외된, 그래서 어디서나 홀대받는 빈병이 박선민의 손을 거쳐 근사한 컵으로, 화병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를 통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도 자신만의 관점으로 가치를 높여가는 일의 중요성을 느낀다.

“이 작품이 그 맥주병으로 만든 거라고요?” 박선민의 ‘리보틀Re:bottle’을 첫 대면한 이들이 뱉는 첫마디다. 그도 그럴 것이 대개 업사이클링 제품에서 감지되는 익숙한 조형과 어색한 만듦새는 어디서도 느껴지지 않으며 그 자체의 조형적 완결성, 완성도가 특색이다. ‘리보틀’은 박선민이 2014년부터 이어온 유리병 및 유리 용기 업사이클링 프로젝트다. “흔히들 빈병을 업사이클링했다고 하면 하단의 원통 부분만 절단해 쓰는 형식을 떠올려요. 그래서 마감 방식과 형태를 달리한 ‘리보틀’ 프로젝트를 보고는 어떻게 이렇게까지 만들 생각을 했느냐고 물으시는 것 같아요. 저는 업사이클링이란 가치가 중요한 만큼 사고 싶은 마음이 드는 상품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기꺼이 값을 지불하고 싶게 하는 가치를 만들기를 원했죠. 그래서 상품으로서의 기능, 완결성, 완성도에 신경 써서 제작 방식을 정했어요.”

“업사이클링이란 가치가 중요한 만큼 사고 싶은 마음이 드는 상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박선민의 셈법은 다르게 흐른다. 빈병이란 다른 이들에게 쓰레기에 지나지 않으나 박선민에게는 실리적 재료가 되었던 이유다. “인간관계도 그렇잖아요. 한 그룹에서의 역할이 끝났다고 해도 다른 그룹에서 또 다른 역할을 할 수 있듯이 빈병도 일차적 기능을 끝냈지만 얼마든지 또 다른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만들고 싶었고요. 일단 저는 빈용기보증금제도에 해당되지 않는 병을 사용해요. 제도에 해당하는 병은 충분히 다시 잘 쓰일 수 있으니까. 그래서 와인병, 사케병, 탄산음료병, 소스병 등 색깔도 형태도 다양한 여러 용기가 저의 수집 대상이죠.

업사이클링이라고 해서 흔히 하는 오해, 예를 들어 재활용 재료이니 작품 가격이 더 저렴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질문도 받을 것 같아요.
이제 '업사이클링인데 왜 비싸?'라는 생각은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이 된 것 같아요. 제가 공예품 재료로 빈병을 선택한 것뿐이지, 이 재료로 상품을 만들기까지 쓰는 시간과 에너지는 업사이클링이 아닐 때와 차이가 없거든요. 또 한 사람이 제작할 수 있는 수량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가치 기준 또한 공산품과 다를 테고요. 공예품을 구매할 때 제작 공정, 유통 과정을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결정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박선민은 작품 가격을 매길 때도 자신만의 루트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품 가격이 그냥 정해지지 않거든요. 순수 재료비 외에도 도구의 전기세, 가스비, 소모품 구입비, 인건비, 포장비 등이 필요하고 이 항목들을 잘 따져서 하나의 상품이 만들어지기까지 투입되는 돈을 셈해야 해요. 또 저처럼 직거래가 아니라 유통처를 통해 판매하는 경우 중간 수수료까지 생각해야 하고요. 더 길게, 지치지 않고 일하는 환경을 만들려면 돈을 경영하는 일에서도 자신만의 원칙과 규칙을 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업사이클링’, ‘재활용’, ‘친환경’과 같이 박선민을 수식하는 단어가 좁혀지다 보니 그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수량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제 작업이 환경적으로 크게 도움 되는 일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이런 일도 가능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 또한 그렇지만 요즘 소비자는 브랜드의 사회적·공익적 가치에 돈을 지불하잖아요. 그 덕분에 오늘날의 지속 가능성에 관심을 가진 브랜드와 협업하는 기회를 얻기도 해요. 화장품 브랜드 아로마티카가 지난 4월 22일 론칭한 플래그십 스토어 아로마티카 제로 스테이션 카페에 ‘리보틀’ 시리즈 컵이 들어가 있고요. 또 와인 전문 수입업체인 심퍼티쿠시에서 제안해 앞으로 협업 작업을 할 것 같아요.

요즘 관심 있는 주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전통 문양에 관심이 많아서 ‘리보틀’ 프로젝트에서 디자인적으로 어떻게 구현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유리라는 재료는 가열해서 형태를 다시 매만질 수 있는 장점이 있거든요. 굴곡 없는 원기둥 형태인 맥주병이나 사케병을 부드러운 곡선이 가미된 전통 매병이나 문매병 형태로 바꿔보는 거죠. 수입한 병이 거의 폐기되거나 매립되는 상황인데 이러한 ‘외제’ 병을 '한국적 느낌으로 재해석해 역수출하면 재미있겠다!'라는 역발상으로 제작했죠. 아직 정식 루트로 수출한 적은 없지만 드문드문 해외 편집숍에서 문의가 와요. 특히 유럽이나 미국은 국내보다 사회적으로 업사이클링에 대한 관심이 크고 그런 제품을 찾는 소비자도 많다고 들었어요.

프리랜서는 수입이 불규칙하잖아요. 스스로의 안정을 위한 저축 노하우가 있나요?
노하우라고 할 만한 것은 아니라도 그저 성실히 각종 보험과 연금과 주택청약종합저축을 밀리지 않고 착실하게 납입하는 것, 그리고 소상공인을 위한 노란우산공제에도 가입했고요. 그 외의 노력은 꾸준히 몸을 움직여 수입을 창출하는 일밖에 없는 것 같아요. 왜냐면 작가란 직업은 은퇴가 없잖아요. 건강상 이유나 개인적 사정으로 더는 작업할 수 없다고 스스로 손을 놓지 않는 이상 계속할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공예 일이란 게 굉장히 노동 집약형 작업이기 때문에 나이가 들었을 때 제가 해낼 수 있는 성과가 지금과 다를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때를 위한 대비가 필요하겠죠.

박선민은 일상을 이루는 근간을 돌본다. 통장도, 체력도 그에게 관리해야 할 중요한 씨앗이다. 땀 흘려 돈을 벌고 영양제를 챙겨 먹듯이 저축을 한다. 그의 다음 과제는 공간 마련이다. “작업하는 공간과 거주하는 공간을 한곳에 마련하고 싶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그 소망을 이룰 수 있을지를 상상해요. 몇 살까지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은지, 자본금은 얼마나 필요할지, 어떻게 마련할지, 질문을 만들다 보면 답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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