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보다는 유일함을 파세요
경쟁보다는 유일함을 파...

Interviewee|현광훈

  • 연령 41

  • 근로형태 프리랜서

  • 연차 13년차 이상

  • 보유한 금융 상품 신용카드,예적금,보험,부동산

  • 한 달 생활비 250~300만 원

그의 인생 경영 방식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뻔하지 않은 곳에 올인’이 아닐까. 금속조형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다들 한다는 작품 활동을 마다하고 새로 시계 제작을 배우겠다고 했다. 그것도 모자라 수업 커리큘럼이 갖춰진 학교로 유학을 가는 대신 홀로 작업실을 열고 이베이에서 이름 모를 도구부터 사들이며 독학을 시작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나만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안 될 거란 소리를 들으니까 오기가 생기던데요.” 전 세계 40여 명이 전부라는 독립 시계 제작자 중 한 명인 현광훈. 모두의 예상을 빗나가는 선택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현광훈은 효율을 따지지 않는다. 그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시간과 돈을 쏟는다. 1mm 나사 부품 하나까지도 모두 직접 만들어서 쓰는데, 시장에서 팔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제 손으로 시계를 완성하겠다는 고집이 가장 큰 이유다. 그의 몸을 움직이는 힘은 유일함에 있다.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경험과 이야기에 높은 점수를 매긴다. “만약 국내에 워치메이커가 있었다면 저는 여기에 발을 내딛지 않았을 것 같아요.” 뻔하지 않을 때 ‘올인’을 외치는 것, 그것이 그의 인생 투자 철학이다.

“적어도 실패하는 구매는 없어요. 그조차도 배울 거리를 주니까요.”

길이 없을 때는 밀고 나갈 뿐이다. 국내에 시계 제작을 배울 곳도, 도구를 살 곳도 없었으나 인터넷에서 활로를 찾았다. “시계 제작을 배우겠다고 마음먹고 네이버에 먼저 ‘시계학원’을 검색해봤어요. 그런데 없더라고요. 그래서 유학을 가려고 스위스부터 일본까지 여러 학교의 커리큘럼을 알아봤는데 결국 독학해야겠다는 결정에 이르렀죠. 유학 가려고 모은 돈 800만 원으로 종로 예지동 시계 골목에 작업실을 구하고, 그때부터 한 2년간 유튜브와 이베이만 쳐다본 것 같아요. ‘워치메이커watchmaker’, ‘워치메이커 툴watchmaker tool’ 이런 식으로 검색을 엄청 했어요. 말 그대로 흑백 영상 속 이국의 워치메이커 어깨너머로 보이는 도구들을 눈으로 익혔다가 이베이에 비슷한 게 올라오면 무작정 구매했어요.

제가 산 기계 대부분이 1800년대 후반, 1900년대 초반 것들이에요. 판매 글을 올린 이도 기계 이름을 몰라요. “할아버지 집 창고에서 나왔어요”, “뭔지 모르지만 가져다 쓰세요” 이런 식이에요. (웃음) 그럼 잘 작동하는지도 모르고 일단 사요. 만져보면 알겠지 하면서. 그러고는 '여기가 움직여야 할 것 같은데 안 움직이네?' 그럼 분해하고 조립하고. 그러면서 익혔어요. 적어도 실패하는 구매는 없었어요. 어쨌든 직접 만지고 쓰임새를 상상하는 것도 공부였으니까. 제게 소비란 제 능력을 키우기 위한 투자였어요.”

Q 지금도 계속 장비를 사 모으나요?
아내가 저보고 ‘밑 빠진 독’이래요. (웃음)

Q ‘나만의 리그’를 만드는 게 왜 중요했나요? 경제적으로 수입도 보장되지 않거니와 심리적으로도 외롭잖아요..
개인 성향인 것 같아요. 비교하고 경쟁하는 데에는 흥미가 없어요. 남보다 더 낫겠다고 애쓰고 분투하는 데에 동력이 생기기보다는 김이 빠져요. '특이한 일을 하겠다', '돋보이겠다' 그런 생각이 아니라 비교하기를, 비교당하기를 원체 싫어하는 성미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그저 저의 속도를 유지하는 게 좋아요.

Q 2020년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GPHG)의 첫 아카데미 설립 멤버로 선정됐다고 들었어요. 무슨 일을 하나요?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는 흔히 영화계의 오스카상에 비유되곤 해요. 글로벌 시계 업계에서 가장 영예로운 시계 시상식으로 통하죠. 일정 기간 동안 생산, 판매된 시계를 여러 부문으로 나눠 심사하는데 아카데미 멤버는 곧 심사위원 자격을 가져요. 한국에서는 총 네 분이 활동하시고요. 한 해 동안 어떤 시계가 세상에 나왔는지 총망라할 수 있는 장이라 제게도 배움의 장이 되죠. 심사 부문은 대상 격인 황금바늘상을 비롯해 여성 시계, 남성 시계, 스포츠 시계, 주얼리 시계, 공예 시계 등 다양해요. 시간 나면 홈페이지에서 수상작을 한번 구경해보세요. 눈으로 뜯어보는 것도 재미있어요.

세간에는 ‘불안정한 주식보다 명품 시계에 투자하라’는 말이 있다. 그는 시계의 투자 가치를 어떻게 읽고 있을까? “시계의 값이 뛰는 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는데 우선 희소성이죠. 예로 파텍 필립은 돈이 있어도 살 수 없기로 유명하죠. 물량을 철저하게 통제하는 까닭인데, 더욱이 그중에서도 정수라고 하는 몇몇 라인의 경우 구매하려면 본사의 심사까지 거쳐야 해요. 이 밖에 오데마 피게나 브레게도 있고요. 이런 브랜드의 특징은 시계 산업에 획을 그었다고 할 만큼 역사가 깊고, 또 좀처럼 흔들리지 않아요. 잘 팔린다고 더 만드는 그런 전략적인 타협 따윈 없어요. 그러다 보니 신뢰할 수 있는 거죠. 구매한 가격에서 2배 이상은 반드시 오른다는 게 시장 분위기니까 모두들 선망하게 되고요.”

“내가 투자한 대상에 관해 누군가 공감하고 인정할 때 힘을 얻는다고 생각해요.”

그는 공감이 곧 가치를 만든다고 말했다. “우리가 시계를 사고 수집하는 데에는 자랑하려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자신이 만족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 시계를 찼을 때 누군가 알아봐 주는 것, 다시 말해 내 취미에 관해, 내가 투자한 대상에 관해, 내가 생각한 가치에 관해 누군가 공감하고 인정할 때 힘을 얻는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는 독립 시계 제작자의 시계는 브랜드 시계에 비해 부연 설명이 더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겠네요. (웃음) 하지만 타깃층이 더 예리해질수록 더 큰 만족을 느낄 수 있어요. 어디에 기준을 두느냐에 따라 투자 대상도 달라지겠지요.”

Q 프리랜서인데 어떻게 수입과 지출을 관리하나요?
사실 작품이 언제 팔릴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거든요. 설령 한꺼번에 주문이 많이 들어온다 해도 그만큼 해낼 수도 없어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고, 또 제가 만족하는 품질 기준을 맞춰야 내놓을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적더라도 수입원을 다각도로 만들어놓긴 했어요. 작품 판매는 별개로 치고 대학 강의와 제 작업실에서 여는 워크숍이 나름의 고정 수입이죠. 돈을 벌면 다시 작업실 장비에 투자하고요. 문제는 그래서 저축을 못 한다는 거예요. 솔직히 말해 가만히 있는 돈을 두고 못 봐요. (웃음)

Q 현재 금융에 관한 고민이 있다면요?
그랬던 생각이 이제는 점점 달라지고 있어요. 사고 싶은 장비를 얼추 다 샀고 무엇보다도 작업하는 데에 부족함을 느끼지 않아요. 한편으로는 아이도 커가니 마냥 지출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라고 깨달았죠. 집값은 오르기만 하니 이대로 일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집을 살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면 어디에 투자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어요.

현광훈은 경쟁심보다 유일함을, 효율성과 안정감보다 설렘을 높이 산다. 익숙함에 유영하기보다는 미지의 세계로 다시 뛰어드는 것을 즐기는 선수. 그는 어쩌면 “다른 이들이 욕심낼 때 두려워하고, 다른 이들이 두려워할 때 욕심을 내라”는 워런 버핏의 말처럼 자신만의 기준으로 이러한 삶의 방식을 단련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꿈은 독립시계제작자협회(AHCI) 회원이 되는 것. 회원이 극소수인 건 둘째치고 기존 회원의 추천서, 현장 실사, 5년간의 작품 심사, 그리고 위원회의 만장일치가 있어야 이름을 올릴 수 있다.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독립 시계 제작자 필리프 뒤푸르Philippe Dufour도 여기 회원이다. 현광훈이 꿈을 이룬다면 국내 최초가 될 터. 그는 오늘도 유일무이함을 위해 투자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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