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에도 나는 ‘좋아하는 옷’을 산다
60대에도 나는 ‘...

Interviewee|지성언

  • 연령 67세

  • 근로형태 직장인

  • 연차 13년차 이상

  • 보유한 금융 상품 예적금,주식,펀드

  • 한 달 생활비 250~300만원

“옷을 살 땐 가격보다 가치를 봐요. ‘먹방’에서도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고 하잖아요. 스타일이 마음에 들고 만족스러운 옷을 살 때 제게 그 값은 0원이에요.”

중국어 교육 플랫폼 차이나다 공동 대표이자 틱톡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지성언은 소위 ‘패피’로 불린다. 우아한 백발을 제외하고 그의 스타일만 봐서는 60대 중반이라고 보기 힘들다. 그를 처음 만난 곳은 성수동의 한 고층 빌딩 사무실이었다. 그는 특유의 해사한 미소를 띤 채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촬영이 끝난다는 말에 잠시나마 그가 일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지성언은 틱톡 크리에이터로서 키끼리라는 MCN 회사와 협업해 패션 관련 영상을 찍는 중이었다. 그는 촬영장 중앙에 세워둔 간이 탈의실에서 여러 벌의 옷을 멋지게 갈아입고 나왔다. 셔츠 깃을 세심히 매만지고 안경을 바꿔 끼우며 옷에 어울리는 스니커즈를 선택하는 것까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지성언은 자신을 명실상부한 N잡러로 소개했다. “요즘 저는 책 <그레이트 그레이>를 쓴 저자도 되었다가, 중국 인터넷 신문 <인민일보>와 화장품 관련 스타트업의 고문이 될 때도 있어요. 최근에는 패션 칼럼니스트 역할도 하고 있죠.” 이런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기 전 그는 30년 넘게 LG그룹에서 중국권 주재원으로 근무했다. “처음에는 초대 LG상사 대만 주재원으로 일을 시작했어요. 또 베이징에서는 최초의 중국 본토 주재원으로 민간 외교관 역할도 하면서 수출입의 최전선에서 일했죠. 마지막 10년 동안은 LF 중국 법인장으로 헤지스Hazzys 등의 브랜드를 중국에 선보이는 일을 했습니다.”

“(인생은 마라톤보다) 철인 3종 경기를 더 닮았다고 생각해요.”

4년 전 그는 오랜 중국 생활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당시 주변 사람들은 그가 한국에서 적응하지 못할 거라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성언에게는 그 시기가 고난의 시기라기보다 단순한 전환점에 가까웠다. “사실 전 은퇴한 적이 없어요. 중국에서 귀국해 딱 2주간 일본 여행을 하면서 저 자신을 리셋하고 바로 스타트업으로 출근했거든요. 은퇴를 연극으로 비유하자면 그 무대에서 내려오는 게 아닙니다. 죽을 때까지 내려와선 안 돼요. 과거에 주인공 역할만 했다면 은퇴 후에는 조연이나 단역, 무대 위 소품처럼 배역이 달라지는 것뿐이에요.”

은퇴를 새롭게 계획하려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선 120살까지 살아야 한다는 사실부터 받아들여야 합니다.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는 것도 이젠 너무 시대착오적인 말이 돼버렸어요. 철인 3종 경기를 더 닮았다고 생각해요. 마라톤은 그저 달리기만 잘하면 되지만, 철인 3종 경기는 수영으로 출발해서 사이클로, 또다시 마라톤으로 결승선까지 달려야 하니까요. 문자 그대로 N잡러가 되어야 하죠.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어가되 깊이뿐 아니라 다양성도 갖춰야 해요. 일단 자신의 콘텐츠를 확보하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기회도, 돈도 따라올 거라 생각해요. 요새 초등학생들의 장래 희망 1순위가 유튜버 아닌가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요. ‘내 콘텐츠는 돈이 안 될 거야’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말이기도 해요.

고위직, 대기업 등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타이틀을 뒤로하고 스타트업, SNS 크리에이터 등의 신대륙으로 나선 그의 모습이 새삼 용감해 보였다. 하지만 그런 일이 가능했던 건 자신이 새로운 일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은 아니라고 말을 이었다. 그는 현업에 있을 때부터 패션업이 아닌 다른 일을 막연하게나마 꿈꾸었다. “오랜 세월 치열하게 보고 배운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젊은 친구들에게 나누는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 방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우연히 차이나다라는 스타트업에서 제안이 왔을 때 어떤 조건에도 구애받지 않고 승낙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또 한국으로 돌아와 소위 ‘안방 늙은이’가 되지 않고 젊은 사람들과 호흡하겠다는 그의 방향키는 틱톡,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에서 좀 더 캐주얼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지성언에게 하루도 빼먹지 않는 루틴이 있다면 걷기다. 그는 매일 아침 8시 반에 아내와 함께 한강 변으로 나가 만 보씩 걷는다. 미세 먼지가 심한 날은 유튜브를 통해 ‘집에서 만 보 걷기’ 같은 영상을 틀어놓고 하루를 시작한다. 걷는 것만큼 그가 꾸준히 해온 운동은 골프다. “골프는 돈이 좀 드는 스포츠죠. 하지만 제가 굉장한 재력가라서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30대 때 주재원 생활을 하면서 사교와 접대를 위해 골프를 접했어요. 지금까지 한 30년 동안 꾸준히 쳤으니 골프는 제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동이죠.” 지성언은 훗날 골프의 에이지 슈터가 되는 게 목표다. 에이지 슈터란 라운드를 자신의 나이 또는 그 이하의 타수로 치는 사람을 뜻한다. 현역 선수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는 이 목표가 삶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 믿는다. “에이지 슈터가 되려면 건강이 허락해야 하고, 같이 칠 친구가 있어야 하고, 라운딩할 수 있는 경제력도 갖춰야 해요. 그러니 제게 골프란 장수는 물론 인간적으로도 성공하는 삶의 바로미터가 아닐까요?”

요즘 산 물건 중에 가장 만족하는 것은?
77인치 OLED TV요. 그전까지는 그냥 TV 화면을 보기만 했다면 이제는 영상 종류에 따라 음향도 조절하고 색감, 스케일 같은 새로운 기능을 섭렵하고 있어요. 며칠 전에는 영화관 모드를 설정해두고 넷플릭스의 중국 드라마 <겨우 서른>을 재미있게 봤어요. 드라마 배경인 상하이는 제가 마지막으로 근무한 곳이거든요. 드라마 속 젊은 친구들이 제가 가던 곳에 가고, 제가 먹던 음식을 먹고, 제게 매우 친근한 중국어를 하며 치열하게 사는 모습이 매우 반갑고 재미있더라고요.

최근 주식, 비트코인, 펀드, 저축, 예금 등 금융을 접해본 경험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해주세요.
주식은 젊었을 때 아픈 기억이 많아요. 다만 S전자 같은 대형 우량주 중심으로 아주 긴 호흡으로 쟁여둔 것은 운 좋게도 높은 수익률을 기록 중입니다. 펀드는 제가 중국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고 차이나펀드를 했다가 아내에게 많이 혼난 기억뿐입니다. 최근엔 동학 개미들의 활약을 보면서 ‘나도 저 개미 중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베짱이처럼 흐름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면서 배만 아파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관심 있게 배워보고 싶은 금융 분야가 있나요?
블록체인의 잠재된 영향력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클 것입니다. 이를 기반으로 한 암호 화폐, 특히 비트코인은 그동안 남의 이야기라고 신경 안 썼는데 관심을 갖고 배워보고 싶습니다. 앞으로 살날이 이렇게 많고, 투자 활동을 하지 않기에는 아직 너무 젊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성언이 한국에 돌아와 친구들 모임에 나갔을 때 모두가 깜짝 놀랐다. 친구들은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며 나이에 맞지 않는 스타일에 낯선 티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하지만 모임이 끝난 후 은근슬쩍 다가오거나 전화를 걸어온 친구가 여럿 있었다. 스타일에 대한 조언을 구하거나 시간 있을 때 함께 옷 사러 가지 않겠느냐 물어보기 위해서 말이다.

“이 나이에 남사스럽게 찢어진 청바지를 입느냐며 타박했던 친구들도 사실은 마음 깊은 곳에선 젊고 멋지게 보이고 싶은 욕망이 있었어요. 제가 그런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를 던졌는지도 모르죠. 긍정적인 자극으로 인해 요즘엔 부부 동반 모임을 하면 절대 안 바뀔 것 같던 친구들의 스타일이 조금씩 변하고 있어요.” 그가 말한 ‘선한 영향력’이란 이런 것이다. 대규모 청중을 앞에 두고 강연하지 않아도, 그가 사는 동네, 그가 만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작은 화두를 던지는 것. 앞으로 그가 새롭게 열어갈 멋진 시니어 라이프가 어떤 사람들에게 얼마나 영향을 줄지 기대된다. 아마 그는 오늘도 현관문을 나서며 주문을 외웠을 것이다. 그가 스타트업에 처음 출근하던 날 아내가 일러준 대로 “꼰대는 되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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