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아파트에서 단단하고 새로운 삶
오래된 아파트에서 단단...

Interviewee|김민정

  • 연령 37세

  • 근로형태 프리랜서

  • 연차 8~12년차

  • 보유한 금융 상품 예적금,보험,주식,부동산

  • 한 달 생활비 100~150만 원

“어떻게든 서울에 있는 아파트를 살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해요. 하지만 좀 더 넓고 쾌적한 곳에서 마음 편하게 지내는 게 결국엔 더 만족스러운 일이라 생각해요.”

뉴스 방송 작가 겸 유튜브 채널 ‘1인2묘 가구’의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김민정은 3년 전 서울 노원구 아파트와 경기도 고양시 아파트를 고민하다 후자를 선택해 구매했다. 요즘 솟구치는 서울 아파트값을 볼 땐 그도 마음이 뒤숭숭하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를 만나기 위해 도착한 집은 사랑할 수밖에 없는 구석이 넘쳐났다. 오후의 청명한 빛이 넓은 거실에 온통 들어왔고 화이트 컬러와 나무 질감이 조화를 이루는 가구들이 세련되고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캣 타워에서 평화롭게 빛을 즐기는 고양이 두 마리까지, 동시대를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집이었다. “요즘은 빛이 드는 거실 소파에 앉아 책 읽을 때가 가장 만족스러워요. 채광이 아주 좋은데, 특히 해 질 때 들어오는 주황빛이 정말 아름답거든요.”

김민정이 마음에 쏙 드는 이 집을 갖기까지는 처절한 고군분투가 있었다.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그에게 집이란 월세나 전세 개념이지, 사는 것이 아니었다. 비혼, 비정규직 여성이란 조건 아래 집을 산다는 건 딴 세상 얘기라고만 치부했기 때문이다. 그는 14년간 자취 생활을 하며 여성이 혼자 사는 위험을 몸소 체험하기도 했다. 막연히 ‘안심하며 살 만한 공간’을 꿈꾸던 김민정에게 내 집 마련의 꿈을 자극한 한 가지 사건이 있었다.

“친구가 자가를 마련한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어요.”

“방송 작가 친구랑 술 먹고 놀다가 차가 끊겨서 그 친구 빌라에 가서 잠을 자게 되었어요. 알고 보니 그 친구가 집주인이더라고요. 나와 같은 직업, 같은 나이, 같은 성별의 1인 가구가 월세나 전세가 아닌 자가를 마련한 것을 보고 ‘이게 실제로 가능한 일이구나’ 하고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어요.” 곧바로 그는 ‘이거 나도 해볼 만한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Q “집을 산 여성이 주변에 있으면 내 집 마련에 속도가 붙는다”는 말씀을 한 적이 있어요. 그 이유에 대해 좀 더 얘기해주세요.
선례를 바로 곁에서 목격하는 건 매우 중요한 것 같아요. 예전에는 돈을 많이 버는 연예인, 직업적으로 성공한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나와 같은 직업을 가진 동갑내기 여성이 작지만 아늑한 내 집을 가진 걸 보고 인식이 변하게 되었어요.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늦게 깨닫는다면 그만큼 내 집 마련의 속도도 늦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김민정은 집을 사겠다고 마음먹자마자 '매우 비효율적인 절약법'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그는 소비로 스트레스를 푸는 차원을 넘어 광기가 서린 ‘프로 소비러’였기 때문이다. 빈티지 아이템에 열광했을 땐 세계 각지의 유저들과 플로럴 닥터 마틴 신발을 차지하기 위해 각국의 시차를 극복하며 온라인 경매에 집중했다. 일본 주방용품에 마음을 빼앗긴 시절에는 가파바시 거리에 숙소를 잡아두고 눈만 뜨면 물건을 사들였던 경험도 있다. 이런 광기가 집을 사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사라지고 무모한 절약법이 탄생한 것이다.

한겨울에도 보일러를 틀지 않고 패딩을 입은 채 떨었고 피곤해서 쓰러지기 직전에도 대중교통을 이용했으며 ATM 수수료 1000원이 아까워서 은행까지 30분을 걸어가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악착같이 아껴도 집값이 치솟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쓰는 것을 줄이는 대신 버는 것을 늘리기로 결심했다. “투잡은 특별한 작가들만 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안 될 거라 단정하지 않았어요. 기다린 끝에 적당한 일들이 들어왔어요. 그 후엔 주말 뉴스나 다큐멘터리 알바, 기업 홍보 알바 등 할 수 있는 건 닥치는 대로 했어요. 다섯 가지 일을 해내던 때도 있었죠. 제 삶을 일에 다 갈아 넣었기 때문에 돈을 쓸 시간조차 없으니 더 잘 모이더라고요.”

Q 자신만의 소비 원칙이 있다고 들었어요.
첫째는 시간을 벌어주는 소비에는 돈을 아끼지 않아요.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라서 이를 아껴주는 소비는 지향하는 편이에요. 지하철을 타면 1시간, 택시를 타면 20분일 경우 주저 없이 택시를 선택합니다. 1인 가구는 임금 노동, 가사 노동 등을 혼자서 해내야 하기에 가사 노동을 대체해주는 가전제품에도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시간을 벌어주는 소비에는 돈을 아끼지 않아요.”

둘째는 소비에 소요하는 시간은 30분 내로 정했어요. 물건을 사다 보면 최저가나 무료 배송을 검색하다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쓸 때가 있죠. 저는 소비 그 자체보다 이런 식의 시간 낭비를 더욱 경계해요. 또 소비 활동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려고 출퇴근 시간에 쇼핑하는 경우가 많아요. 세 번째는 버릴 때를 생각하고 물건을 사요. 제가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면서 옷장의 수많은 옷을 버렸지만 아직 버리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플로럴 닥터 마틴이에요. 경매 경쟁을 하며 어렵사리 산 기억 때문에 쉽게 버리거나 팔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빈티지나 한정판 등 지나치게 희소한 물건은 사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힘들게 구한 물건엔 집착이 들러붙기 마련인 것 같아요.

하지만 정신과 육체, 심지어는 삶까지 일에 갈아 넣었기 때문일까, 목돈을 목표치까지 마련하고 집을 산 뒤 그에겐 큰 공허함이 찾아왔다. 상처받은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그는 단호하게 모든 일을 그만두었다. 자신을 버티게 해줄 일상이 돌아오면서 그가 시작한 것은 유튜브였다. 작은 수익이라도 내볼 요량으로 첫 단추를 끼웠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올릴 때마다 콘텐츠에는 보다 크고 진솔한 바람이 담겼다.

“’30대 비혼 여성의 내 집 마련 분투기’ 시리즈를 만들었어요. 많은 여성들이 저처럼 자기만의 방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어요.” ‘1인2묘 가구’라는 채널 이름에서는 이제 ‘1인 가구’라는 단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을 얘기하겠다는 외침이 들린다. 그는 ‘1인2묘 가구’ 채널을 발판 삼아 최근에는 책 <결혼은 모르겠고 내 집은 있습니다>를 펴내기도 했다. 출판 편집자들이 유튜브 채널을 통해 많은 러브콜을 보낸 결과였다.

Q 책에 대한 독자 반응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용기를 얻어 내 집 마련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는 피드백도 좋았지만, 이 책 이야기가 ‘내 이야기인 줄 알았다’는 피드백이 기억에 남습니다. 저처럼 최근 어머니를 암으로 떠내보낸 분, 버티고 버텼던 직장에서 결국 큰 상처를 받은 분,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뤘음에도 공허함을 느낀 분 등등. 단지 내 집 마련이라는 목표의 자극제가 아니라 ‘내 이야기 같다', '큰 위로를 받았다’는 피드백을 받았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보람을 느꼈습니다.

김민정은 최근 120만 원짜리 중고차 ‘모닝’을 사면서 삶의 반경이 달라졌다며 신나게 말을 이어갔다. 단조로웠던 일상의 패턴이 달라지며 삶 자체도 변하는 기분이라고 말이다. 이제는 퇴근 후에 아카데미에 다니며 글 쓰는 작가로서의 삶을 더 다져볼 계획이라고. 누군가의 집을 빌려 살다가 자신만의 집을 갖게 되면 그 공간으로 새로운 생각이 스민다.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이전보다 더 넓어지고 비혼이라는 관념을 넘어 ‘잘 사는 것’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된다.

그의 책을 읽다 보면 새로운 장소로 ‘나아가는’ 힘을 발견하게 된다. 민주화 운동을 한 송제숙, 자기만의 방을 외친 버지니아 울프, 잃어버린 임금에 대해 묻는 이민경, 여성국극을 다룬 영화 <왕자가 된 소녀들> 등 이 책에서 끊임없이 호명되는 이름들도 그가 힘을 잃고 주저앉아 있을 때 용기를 얻은 경험 때문이리라. 김민정은 앞으로 비혼, 1인 가구에서 나아가 이들을 위해 돈을 굴리는 얘기도 본격적으로 해볼 예정이라고 한다. 그를 곁에 두고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조금씩 달라질 당신의 삶이 궁금하다면 김민정의 유튜브든 책이든 SNS든 무작정 따라가보라. ‘이거 나도 해볼 만한데?’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드는 것만으로도 그 꿈의 반은 시작된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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